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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친야설

수레바퀴 - 2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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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1,033회 작성일 20-01-17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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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유미 누나의 모습이 그렇게 내 가슴을 저리게 할 줄은 몰랐었다. 솜씨가 별로인 선미 누나가 아예 요리를 포기하고 비싼 돈 들여 주문한 그 맛있는 음식들이 내 입 속에서는 모래알로 변해 버렸고, 꼭꼭 막힌 식도를 억지로 열어 봤지만, 침이 말라 깔깔하기만 한 그 음식들이 이빨 자국 몇 개 났다고 통과될 리가 없었다.



술 만큼은 예외였다. 왜 그렇게 잘도 넘어가는 지... 그녀가 짓는 미소의 횟수만큼 내 심장의 멍도, 내 술잔의 개수도 늘어만 갔다. 일부러 그러는 거지, 누나......? 나 보라고.....? 어른들이 안 계셔서인지 아무도 나를 말리지 않았고, 그래서 더 많이 마셨다.



소외감에서 오는 자조적 쾌감이랄까? 아니면, 무기력함에 대한 저항이랄까? 나도 시종일관 웃고 있었다. 아니, 과도하게 웃음을 남발하고 있었다. 그들이 막내 동생에게 바라는 것 이상만큼 더 귀여움을 떨었다. 그래도 마음 속은 불타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들 거실 소파로 간 잠깐 동안, 혼자 부엌에서 먹다 남은 음식을 정리하고 있는 유미 누나에게 다가갔다. 며칠 사이에 그녀는 말을 걸기조차 어려워질 만큼 멀어져 있었다. 뭔가 따지거나, 요구하고 싶은 것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그녀가 보여주는 단 한 번의 미소만을 기대하고 있었다.



“내가 좀 도와줄까, 누나?”



누나의 손이 잠시 멈췄다가 다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괜찮아.”



뒤도 돌아보지 않는 그 매정함... 유미 누나에게 그런 일면이 있다는 것도, 그리고 그녀가 내게 그런다는 것도 현실적이지 못했다. 뻐근한 통증이 가슴 아래에서 밀려 올라왔다. 나로서는 당연한 항의...



“나한테 너무하는 것 아냐?”



돌아서서 나를 쳐다보는 누나의 얼굴에 미**고는 없었다. 달싹거리는 입술...



“누나가...... 동생한테 할 수 있는 만큼이야.”



거실로 걸어가는 누나의 뒷모습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다시 뿌옇게 흐려졌다. 물을 마시는 척 하면서, 눈물 자국을 없앴다. 누나가 진규 군을 등장시킨 이유는 역시 그에 대한 애정은 아닌 것이었다. 내가 그녀의 동생일 뿐, 그녀의 옆자리를 차지할 자격은 없다는 걸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었다. 어쩌면, 누나도 자기 자신에게 그걸 강요하고 있는 지도 모르지....



“삼육구 하자.”



대학교 신입생다운 유치한 발상이라는 항변 한 마디 없이 응해주는 고마움..., 틀린 사람은 질문을 받기로 하고 질문에 대답을 못하면, 맥주를 한 잔 마시기로 간단히 룰을 정했다. 질문을 할 권리는 분위기 상승을 위해 당연히 그 전에 질문을 받았던 사람이 하기로...



처음에는 점잖은 질문들만 나왔다. 신혼부부에게는 아이는 몇이나 가질 생각이냐는 둥, 새 커플에게는 첫 데이트는 어디서 했느냐는 둥의 빤한 질문들... 그런데 걸린 진규 군에게 선미 누나가 한 엉뚱한 질문이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말았다.



“언제 결혼할 생각이예요? 호호호호.”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한 커플에게 결혼이라니? 그녀의 표정에 섞인 장난기는 나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 얼굴을 힐끗 쳐다보고 딴청을 피우는 것이 나를 놀리고 싶은 생각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게다가 재치 있는 진규 군의 대답.



“유미 씨만 원하면 지금 당장 식 올리죠, 뭐.”

“와하하하!”



“호호호! 멋있다.”



그저 피식 웃어주었지만, 불쏘시게 같은 걸로 심장을 쑤시는 기분이랄까? 심통 부리지 말자...! 좋은 날 속 좁게 굴지 말자...! 마음을 다지며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았다. 다음 번에는 내가 틀려서, 진규 군이 질문할 차례.



“수호는 여자 친구 언제 보여줄 거야?”



대답 대신 맥주를 원샷했다. 그걸 보고 선미 누나가 한마디 쏘았다.



“어이구, 야~! 언제라고 대답하면 될 걸 굳이 술은 왜 마셔?”

“아직, 계획이 없거든.”



“처남이 괜히 술 마시고 싶은가 보다. 하하하.”



마음이 비교적 평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가 보다. 그 다음 번에 유미 누나가 걸렸을 때 내가 한 질문은 진규 군이 있는 자리에는 전혀 적당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 있어?”



그럴 때 태연하게 대처하길 바라는 건, 유미 누나에게는 무리한 주문이었다. 술기운 때문에 발그레한 그녀의 볼은 더욱 붉어졌고, 그녀의 시선은 테이블을 향했다.



“야, 무슨 그런 질문을 해? 유미야, 대답하지 마.”

“왜? 누구냐고 묻는 것도 아니고, 있느냐고만 물은 건데?”



나는 오기를 부리고 있었다. 내 목소리에는 떼를 쓰는 아이처럼 억지가 담겨 있었다. 잠시 동안이지만 무척이나 어색해진 분위기... 진규 군이 있는 앞이지만, 나는 그녀가 고개를 끄덕거려 줄 거라 생각했다. 어차피, 진규 군도 아니까... 진규 군이 안다는 것을 유미누나도 아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나를 사랑하니까... 그걸 부정하지는 않을 테니까...



유미 누나가 조용히 맥주잔을 들더니, 거품이 나는 노란 액체를 바닥까지 비워냈다. 분위기를 바꿔 보려는 듯, 박수를 치며 환호성까지 내지르는 광식 군과 진규 군... 유미 누나의 부끄러운 듯한 미소... 유미도 술이 늘었다며 호들갑을 떠는 선미 누나. 그들이 나하고는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았다. 질서를 어기는 건 무척 외롭구나.



먼저 나온 건, 들를 데가 있다고 핑계를 대긴 했지만, 유미 누나와 함께 집에 가는 걸 피하기 위해서였다. 토요일 밤 열 한 시에 갈 데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평소에 본 건 있어서, 맥주를 몇 캔 사가지고 택시에 올라탔다.



“어디 갈 건가?”

“한강 공원이요.”



“어느 한강 공원?”

“제일 가까운 데요.”



젠장, 영화에서 볼 때는 멋있기만 하던데...! 허술한 옷감 올 사이를 강바람이 뚫고 들어와 피부를 긁어댔다. 차가운 맥주까지 목구멍 속에 집어넣으니 턱까지 덜덜 떨렸다. 그 추위에도 주말의 데이트를 즐기느라, 여기저기 적잖은 커플들이 앉아 있었다. 혼자 있는 사람은 나 하나 뿐인 듯...



“흐흐흐흐..”



그럴 때 불러내 허물없이 술 한 잔 마실 친구가 없는 내 자신에 대해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는 했지만, 전화를 걸 데는 없었다. 어쩌면 나도 선미 누나만큼 세상을 건조하게 살고 있는 거야... 사랑이라고? 무슨 개뿔....



“에이~ 씨발~!”



찌그러진 맥주 캔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굴러갔다. 마음 먹기에 달린 거다... 내 마음속이 얼음인데 이 까짓 추위 때문에 덜덜 떨다니... 항상 따뜻하고 포근한 데서 안주하고 있어서 그런 거다... 단 한번이라도 유미 누나의 고통을 제대로 나누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지금만 해도... 나만 생각하고 있잖은가? 그녀도 힘들 텐데... 이 못난 이기심...



그때까지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는 대신, 말없이 맥주를 들이마셔 버린 유미 누나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찬바람 때문에 이성이 좀 돌아온 듯, 그녀를 곤경에 몰아넣은 내 자신이 오히려 한심스럽게 생각되었다. 그리고 그 동안 머릿속에서 애써 밀어내고 있던, 기분 나쁜 생각도 다시 꺼내 놓고 해부할 수 있었다.



(차라리 잘 된 건지도 몰라...)



“유미야...!”



(어차피 우리한테는 미래가 없으니까...)



“김 유미...!”



(그녀한테 성실하지도 못했잖아? 앞으로도 그럴 거고...)



“보고 싶다...!”



(내가 첫 남자가 아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거 알아?”



(그럼 더 깨끗하게 끝낼 수 있었을 텐데...)



“지금도 사랑한다.”



(그냥 남동생인 게 더 좋았어...)



“안녕.”







집으로 향하는 대신 유진의 아파트 입구에 서 있었다. 거기 도착할 때까지도 내가 뭘 원하는지가 분명하지 않았다. 유진이 새엄마가 머릿속에 있었지만, 평소에는 마음껏 그녀의 행실을 비난했던 내가 그 시간에 그녀가 보고 싶었다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어차피 집엔 유진이의 아빠, 그녀의 남편이 같이 있을 텐데...



위안을 얻고 싶지는 않았지만,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유진이 새엄마처럼, 내가 아무리 격정적이어도 나를 위해 맞장구를 쳐주거나, 측은한 듯 바라보지 않는 그런 상대를 바라고 있었다. 그저 무뚝뚝하게 내가 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나중에는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는 듯 다 털어버리는 그녀 같은 상대...



그리고 그때의 내 기분이, 나를 자존심이 없어 보이는 그녀와 동질감을 느낄 만큼 비참하기도 했다. 그녀의 아파트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누군가는 잠을 자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망설이던 끝에 결국 다이얼을 눌렀다. 그냥 집에 돌아가서 얌전히 침대에 누워 잔다는 건 생각하기도 싫었다. 그녀의 남편이 받으면 끊지 뭐...



[여보세요.]

[저예요. 김 수호.]



[웬일로...]

[잠깐 밑으로 내려오실 수 있어요?]



[......]

[잠깐이면 돼요. 그냥 얘기나 좀 하고 싶어서...]



[올라와요.]

[네?]



[혼자 있어요.]



문은 열려 있었다. 역시... 그녀도 술병을 앞에 놓고 있었다. 내가 들어갔어도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그녀가 앉은 소파의 맞은 편에 앉아, 베란다 바깥쪽을 쳐다보고 있는 그녀의 시선을 차단했다. 다 마신 잔에 술을 따르더니, 그걸 내 앞으로 밀었다. 헤프게 여며진 나이트 가운 깃 사이로 유방의 안쪽 능선이 관능적으로 노출되어 있었다.



“아버님은요?”

“일본에...”



“유미는...”

“집에 있을 리가 없잖아요.”



“외롭지 않으세요?”

“외로워요?”



“네. 미치겠어요.”

“금방 적응할 거예요.”



술잔에 든 액체를 목구멍으로 넘겼다. 그렇게 많이 마셨는데 또 들어가네... 그녀가 술병을 들더니, 다시 한 잔을 채워 주었다. 앞으로 기운 그녀의 상체에서 가운이 더 멀리 떨어지고, 대접 같은 젖가슴이 흔들거리는 게 보였다. 그 큰 가슴이 일본 놈의 손에 이그러지던 장면이 눈에 선했다. 그녀를 덮쳐도 그녀가 그냥 응해줄 거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나 지쳐 있었다.



술잔을 채운 그녀가 테이블 아래에서 담배 함을 꺼내 올려놓더니, 불을 붙였다.



“저도 하나 피울게요.”

“그러세요.”



고등학교 때 한 두번 피워 본 경험이 있었지만, 역시 연기를 들어 마시자 기침이 나오는 걸 어쩔 수가 없었다. 한참을 켁켁거리다 다시 한 모금... 목구멍이 뜨겁고 아리는 듯한 통증이 생겼지만, 그래도 기분은 괜찮았다.



“사랑해 보신 적 있어요?”

“네.”



“헤어질 때 가슴 아팠어요?”

“네.”



“금방 잊어지던가요?”

“네.”



“어머니가.... 대답하는 로봇 같아요. 뭘 물어도 네, 네 하고 대답하는...”

“내가 로봇보다 나은 게 뭔가요?”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거야? 본인이 나한테 설명해 줘야지... 이러이러하니까 결론적으로 로봇보다는 낫다고 내게 말을 해줘야지...



“감정이 있으시잖아요.”

“기쁘고, 슬프고 그런 거 말예요?”



“네.”

“그런 거 없어요.”



“왜 그렇게 사세요?”

“제가 어떻게 사는데요?”



“진짜 몰라서 물으시는 거예요?”

“몰라요.”



묘하게 울분이 밀려 올라왔다. 그걸 몰라서 묻는 걸까? 정상적인 여자도 그녀처럼 살면, 미쳐버릴 것이다.



“하루 중에 단 한 번이라도 행복한 때가 있어요?”

“......”



“아니, 남자 만나 섹스 하는 것 말고, 다른 일 하시는 거 있으세요?”

“.......”



“어머니하고... 창녀하고 뭐가 다른가요?”



그런 이야기를 하려던 게 아닌데... 그저 기분이 풀릴 만큼만 내 이야기를 하고 안녕히 계세요 하고 인사를 하고 가려고 했던 건데... 창녀라는 단어가 그녀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건드린 게 틀림없었다.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움푹 들어간 눈 속에 있는 검은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느끼기 전에 내 입은 더 심한 말까지 쏟아 뱉고 말았다.



“창녀는 돈 벌려고 하는 거지만... 어머니는 그냥 하잖아요. 창녀도... 어머니처럼 굴욕적으로 하지는 않는다구요.”



벌떡 일어선 그녀의 눈에 서린 노기만 보면, 내 뺨이라도 한 대 후려쳐야 맞았지만, 그녀는 그저 말없이 돌아서서 침실을 향해 걸어갔다. 침실 문이 닫힌 한참 후에야 나는 몸을 일으켜 그녀를 뒤따랐다. 항상 그 경솔함이 내게는 문제라는 걸 알면서도, 또 한 번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그녀의 가슴에 못을 박아버린 것이다. 침실 문에 대고 사과의 말을 늘어 놓았다.



“어머니...”

“......”



“죄송해요. 그런 말 하려던 게 아닌데...”

“흐....흑....흑....”



흐느낌 소리를 확인하고 문고리를 돌렸다. 문은 잠겨져 있지 않았다. 그 때까지 단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했던, 침실로 발을 들여 놓았다. 성수의 테이프에 봤던 익숙한 실내... 그녀는 침대의 모퉁이에 걸터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감정은 있구나. 죄책감이 밀물처럼 엄습했다.



“용서해 주세요.”

“왜... 나를 그렇게 괴롭혀요? 흑...흑...”



“유진이 일 때문에... 어머니를 나쁘게 생각하고 있었나 봐요.”

“수호 씨가... 뭘 안다고 그래요!!”



“알아요. 이해해요.”



그저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말이었는데, 그게 또 그녀의 신경을 건드린 것 같았다. 그녀가 고개를 쳐들고 나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눈물이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눈빛에는 광기가 서려 있었다.



“이해한다구요? 어떻게?”



몸을 일으킨 그녀가 침대의 모퉁이를 돌아 머리맡의 벽에 있는 작은 문의 문고리를 쥐었다. 그녀가 그 문을 잡아당기고 그 내부를 확인한 순간 나는 숨이 멈출 만큼 놀라고 말았다. 가게를 하나 차려도 될 듯 했다. 두 평 남짓한 공간의 삼면을 채우고 있는 장식장에 가득한 물건들......



수갑이나 채찍 같은 거야 눈치만으로도 무엇을 위해 쓰이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성수의 아버지가 새엄마에게 사용하는 것들일까? 저런 건 어떻게 다 사 모았을까? 도대체 대뇌 구조가 어떻게 된 인간이길래... 그녀가 그 중에서 뭔가를 집더니 내 발 아래에 던졌다. 차르륵 소리를 내며 미끄러져 오는 개목걸이...



“절 이해한다고요? 그런 걸로 묶여본 적 있어요? 내가 사람인가? 개새끼지!!”

“어머니...”



“그 어머니란 말 하지 말아요! 그 말 들을 때마다 제 기분이 어떤 줄 알아요? 저한테... 반말하라고 그랬죠? 어떻게 해요, 다른 남자한테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그녀의 몸이 벽을 타고 미끄러지더니 엉덩이가 땅에 닿았다. 얼굴이 무릎 사이에 파묻히고, 다시 처연한 흐느낌이 시작되었다. 그녀가 결혼한 게 겨우 이 년 남짓인데, 그 사이에 그렇게 망가질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성수는 알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껏 가해자인 걸로 알고 있던 그녀가 사실은 가장 큰 피해자였다는 걸...



“저한테... 이상한 거 하라고 하지 말아요... 엄마 같은 거, 저 못해요. 해 본 적도 없고... 할 줄도 몰라요...! 흑...흑...!”



나도 바닥에 주저앉았다. 내가 모르는 게 또 뭐가 있을까? 세상에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아내를 훈련시켜서, 다른 남자한테 내주는 사람이 있다니...



“왜 이혼 안 해요?”

“못해요.”



“왜?”

“내 동생들 다 그이 밑에 있어요.”



그건 그녀의 핑계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사지가 멀쩡하다면 직업을 잃더라도 새 직업을 구하지 못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직한다는 게 얼마나 혹독한 건지, 그 나이의 나는 알고 있지 못했다.



“위자료도 있고... 아직 젊으시잖아요. 얼마든지 새 출발할 수 있어요.”

“저는 못해요...... 껍데기만 남아가지고 뭘 해요.......? 누가 시키지 않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데! 저는... 지금이 좋아요. 만족하고 있다구요!! 수호 씨가 생각하는 기준만 가지고... 날 거기에 맞추려 하지 마세요.”



“......”

“그냥 절 내버려 두세요, 제발......”



새장에서 오래 길러진 새는 문을 열어줘도 날아가지 않는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감옥에서 탈출하는 과정을 그린 미국 영화에서, 오랫동안 수감생활을 한 사람이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던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억압받는 생활에 충분히 길들여져 있었다. 그 환경을 벗어나 그녀 스스로 뭔가 할 수 있다는 티끌만한 자신감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처음에는 친정 식구들의 안위를 위해 그냥 참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사이에 그녀 스스로 그 생활에 적응해 버린 것이다. 성수 이 새끼는...... 나보다 훨씬 이전에 그 사실을 깨달았을 터였다. 또 다른 올가미를 씌워 끌어내기 전에는 그녀 스스로 움직이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렇게 그녀를 끌어내봤자 다시 새장으로 돌아가고 싶어할 거라는 것도.....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 내게 다가오는 그녀의 모습은 집에서 키우는 개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리고 내 허벅지 위에 머리를 올려놓고 웅크리는 모습까지...... 그런 그녀에게 내 마음속의 갈등을 얘기하러 온 내 자신이 한심할 뿐이었다. 그녀에게 있어, 사랑을 버림받은 이야기 따위는 지나가는 자동차의 소음만큼도 관심을 끌지 못할 테니...



“미미라고 불러줘요.”

“미미...”



“저 좀 어떻게... ”



유치한 주종놀이에 얼굴에 소름이 돋았지만, 그녀는 거기에서 위안을 받는 게 틀림없었다. 새둥지처럼 헝클어진 머리칼과 그 아래의 길고 흰 목 줄기를 보자 자지가 뻣뻣하게 일어섰다. 그녀가 젊잖게 키스하고 더듬어가는 밋밋한 섹스를 좋아할 리 없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 끝을 뺨에 대고 쓰다듬자, 그녀가 고개를 돌리더니 그것을 입술로 물었다. 다섯 개의 손가락이 하나하나 순서대로 그녀의 입속에 들어갔다가, 침으로 범벅이 되어 다시 나왔다. 손가락 사이를 핥는 게 남자를 흥분시킨다는 걸 그녀 스스로 알았을까? 그 뱀 같은 허리의 율동을 남편이 가르쳐 줬을 거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런 걸 어떻게 배웠어?”

“뭘....”



“섹스 하는 거....”

“일본에서....”



“일본?”

“가르쳐 주는 데 있어요. 학원처럼...”



이 망할 것들이...! 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하긴 기가 막힌 장사다. 그 학원을 나온 여자들이 모두 성수 새엄마처럼 된다면, 사내새끼들이 아무리 돈이 많이 들어도 마누라를 맡기고 싶어할 테니... 어쩌면 여자 스스로 원해서 갈 수도 있고...



손가락이 번질번질할 만큼 침을 발라놓은 그녀가 더 시킬게 없느냐는 듯 내 얼굴을 쳐다 보았다. 아직 눈물이 가시지 않아, 속눈썹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그 눈이 그녀를 더욱 색정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여자를 그냥 둘 남자는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 같았다. 사랑보다는 소유욕을 느끼게 하는 그녀의 표정...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려 내 앞에 바로 앉혔다. 허리띠는 너무나 허술하게 풀렸고, 손가락 끝으로 밀기만 해도 가운이 그녀의 몸을 벗어나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콤파스로 그린 것처럼 완전한 원형을 갖추고 있는 두 개의 살덩어리가 그녀의 호흡에 따라 오르락내리락 반복하고 있었다. 푹신푹신한 탄려과 매끄러운 비단 같은 피부.... 그런 피부를 얼마나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을까? 남자들이 그녀의 육체에 흥미를 잃으면 그 다음에 그녀에게 남는 건 뭘까?



하지만, 그녀에게 언제까지 그렇게 살거냐는 질문은 의미가 없었다. 그런 걸 물어봤자, ‘몰라요’하는 대답 밖에는 들을 수가 없을 테니... 탐스러운 유방이 내 손놀림에 뭉개지는 동안, 그녀는 상체를 조금 앞으로 내밀고, 턱을 들어 올린 채 그냥 앉아 있었다. 꼭지를 힘주어 눌러도, 그저 얼굴만 찌푸린 채, 싫다느니, 아프다느니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뭔가를 쥔 손을 슬며시 앞으로 내밀었다. 조금 전까지 바닥에 나뒹굴고 있던 개목걸이... 그걸 보자 머릿속에서 불꽃이 터지는 것 같았다.



“채워 달라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나도, 그녀에게는 자신의 피학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줄 그 많은 사내새끼들 중에 한 명일 뿐 인건가? 절대로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지 않았다. 그 잡놈들 중의 하나가 되기는 싫었다. 개목걸이를 받아 그걸 그녀의 목에 채우는 대신, 벽에 깨져라 집어던져 버렸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겨드랑이 아래에 손을 넣고 그녀도 일으켜 세웠다.



“그럴 수는 없어! 내가 원하는 대로 할 거야!”



침대가 내던져진 그녀의 상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출렁거렸다. 90도로 구부러진 관절 때문에 뒤쪽으로 내밀어진 그녀의 엉덩이에서 거칠게 하얀 천 조각을 끌어내렸다. 거대한 만두처럼 보이는 엉덩이 중심의 고랑에 거칠게 손을 가져다 붙이고, 길게 찢어진 균열 사이로 검지와 중지를 밀어 넣었다.



매끈거리는 점막이 벌어지면서, 손가락이 그녀의 몸 속 깊숙이 박혔다.



“으으응~~!”



그녀의 머리가 한차례 뒤로 꺾였다가, 다시 침대에 털썩 떨어졌다. 손가락을 움직여, 보지 속을 헤집었다. 거친 손놀림에 출렁거리는 그녀의 무기력한 육체... 질컥거리는 요란한 소리...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그녀를 모욕할 수 있는 더한 방법을 찾고 있었다. 엄지까지 그 구멍 속에 밀어 넣고 번질거릴 때까지 액체를 바른 다음, 다시 뒤쪽 구멍으로 옮겼다. 뭉툭한 손가락 끝이 압박하자, 깊숙이 밀리는 입구... 하지만 더 이상 후퇴할 곳이 없자 입을 벌리기 시작했다.



“으흑~~~! 흑~~~!”



침대에 놓여있던 그녀의 손이 뒤로 돌아와 내 손목을 찾다가, 이내 내 다른 손에 붙들려 허리 뒤쪽에 고정되었다. 저항할 수단이 없어진 그녀가 허리를 비틀었지만, 그 사이에도 내 굵은 엄지는 괄약근을 벌리며 전진하고 있었다.



“하악~~! 아퍼....!”



엄지 뿌리까지 몸 속에 박히자, 그녀가 다시 힘을 빼고 침대에 널부러졌다. 얇은 막을 사이에 두고 그녀의 몸 속에서 내 손가락이 서로 몸을 비벼대기 시작했다. 그녀의 남은 한 손이 시트를 움켜 쥐는 건, 고통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너무 좋아!! 하아~~! 하아~~! 주인님~~!!”



그녀를 과소평가한 것이다. 그 정도의 고통쯤은 그녀에겐 쾌락을 배가시키는 것 외엔 아무런 효과도 없는 것이었다. 두 개의 구멍이 동시에 수축하면서 손가락을 물어오고, 그녀는 끅끅 소리를 내면서 절정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뻣뻣하게 굳어 있던 그녀의 몸이 간질 경련을 하는 것처럼 주기적인 경직을 일으켰다.



애액이 질퍽하게 묻은 손가락으로 바지를 벗었다. 여태까지 자기 차례만을 기다리고 있던 자지가 덜렁거리며, 그 흉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걸 쥐고 엉덩이 뒤쪽으로 다가가 미쳐 닫히지도 않은 조갯살 사이에 대고 힘을 주어 밀어 넣었다. 긴장이 사라진 그녀의 보지가 신축성을 발휘하며 기둥을 맞았다.



“힘 줘.”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한다더니.... 실제로 그녀의 주인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없는 힘을 짜모아 힘겹게 기둥을 조여주는 그녀의 보짓살... 내 몸으로 그녀의 몸을 덮고 침대에 눌려 있는 젖가슴을 두 손으로 하나씩 움켜 쥐었다. 퍽, 퍽 하는 소리가 날 때마다 그녀의 몸이 무기력하게 출렁거렸다. 본능적으로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그녀의 몸에도 다시 힘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좋다!! 아무리 머리를 짜도 내 상상력이 이 여자가 가진 경험의 한계를 벗어나진 못할 거야... 하지만 뭐 어때? 이 여자는 이렇게 편한데... 내가 뭘 해도 이 여자는 거기서 쾌감을 느끼는데... 귀찮은 감정 같은 거 보여주지 않아도 되고...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잖아? 나한테 섹스 말고는 다른 거 요구하지 않잖아?



“으응... 응... 응... 응...”

‘퍽....퍽....퍽....퍽....’



이거 봐. 조금 전에 느끼고도 또 달아오르잖아....? 이 여자는 절대 남자한테 애틋한 정 따위는 요구하지 않을 거야... 남자가 아니라, 수컷을 원하니까... 사랑 따위를 원하는 게 아니니까.



“미미야!”

“네....네, 주인님.”



“사랑한다고 말해!”

“.......”



“어서!”

“싫어요!”



봐! 역시 그렇지? 손아귀에 잡혀 있는 유방을 으깨져라 움켜쥐었다.



“말해! 사랑한다고!”

“못해요!”



“으으윽~~!”

“아아.... 아.... 주인님.... 하아... 하아....”



머릿속에서 뭔가 폭발한 것 같은 극치감이 몰려왔다. 몸속의 내장까지 자지를 통해 그녀에게로 끌려나가는 것 같았다. 지친 몸을 일으켜 그녀의 옆에 털썩 드러누웠다. 무기력함이 주는 나른한 쾌감....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있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그녀가 큰 용기를 냈다는 듯 말을 건넸다.



“자고 가요.”

“가야 해요. 집에서 걱정할 거고... 유진이가 제 이런 모습 보면 좋지 않을 거예요.”



“저는......”

“말씀하세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좋아요.”

“......”



“뭐든지...”

“앞으로 저 보면.... 좀 웃어줄 수 있어요?”



“그럴게요.”

“억지로 웃는 거 말고... 진심으로...”



“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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